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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2년
제목 [5.29]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 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2-06-04
조회수 105
첨부파일
p220529_질그릇 1단.pdf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24간수는 이런 명령을 받고, 그들을 깊은 감방에 가두고서, 그들의 발에 차꼬를 단단히 채웠다. 25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26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27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검을 빼어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28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하고 외쳤다. 29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30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31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2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34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16:24-34)

 

사도행전 마지막 증언

오늘은 교회력으로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자 부활절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로 부활의 계절’(Easter Season)이 끝나고, 다음 주일부터는 성령의 계절’(Pentecost Season)이 시작됩니다. 우리 교회가 사용하는 성서일과’(RCL)는 매년 부활 절기 구약성서 본문을 사도행전에서 제시하고 있는데, 부활 절기가 오늘로 끝나니까 사도행전 증언도 오늘로 마치게 됩니다. 더구나 6월부터 제 안식년이 시작되니, 오늘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증언일 뿐 아니라, 안식년 전 제 마지막 증언이기도 합니다.

 

빌립보

지난 주일과 이번 주일 본문의 배경은 빌립보입니다. 빌립보는 빌립에게 속했다는 뜻인데, ‘빌립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 왕 빌립 2세를 가리킵니다. 그가 주전 360년경에 마케도니아 동쪽 끝에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 칭했습니다. 주전 168년 마케도니아가 멸망하자 빌립보는 로마 공화국에 병합되었습니다. 한데 주전 42년에 빌립보에서 로마군 간에 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로마군과 시저 편에 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로마군이 내전을 벌였고, 후자가 승리했습니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는 공화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다가, 주전 31년에 그리스의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물리쳐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고, 마침내 주전 27년 로마 제국을 창건하고 초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황제 즉위 후 아우구스투스라고 불린 옥타비아누스는 주전 30년경에, 앞서 빌립보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빌립보를 이탈리아 도시들처럼 자치권, 면세권, 사유권을 갖는 로마의 자치시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래서 빌립보는 주로 로마 시민권자, 즉 제대한 군인들 등이 사는 정착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사도행전 1612절에선 이 도시를 일컬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으뜸가는 도시란 수도(首都, capital)를 의미합니다.




빌립보의 가정교회 탄생 이야기

앞서 말했듯이 바울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자치시였고, 로마의 퇴역한 군인들과 공무원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관계로 로마 제국의 법이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내 도시 안에서는 공적인 예배행위만 인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집회 장소는 사회생활의 중심권으로부터 떨어진 도시 외곽에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빌립보의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빌립보 외곽을 흐르는 지각티스 강가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도행전 1613절은 참석자들이 주로 부인들이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했습니다.

그 청중 가운데 고향 두아디라에서 고급 자색 옷감을 수입해 빌립보 일대에 팔던 루디아라는 부인도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누가-행전에는 이들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God-worshiper),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God-fearer),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God-lover)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회당 예배에 출석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루디아는 가족과 함께 지각티스 강에서 세례를 받고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로써 루디아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인, 정확하게 말하면 크리스천 유대인’(Christian Jew)이 되었고, 그녀의 집은 빌립보에서 첫 번째 가정교회가 되었습니다.

루디아 부인 집에 가정교회가 설립된 뒤의 어느 안식일, 바울 일행은 유대교 기도처가 있는 지각티스 강가로 가다가 귀신에 접해 점치는 한 여자 노예를 만났습니다. 그녀가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악령을 쫓아내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러자 점치는 노예 여자를 부리던 주인들은 돈벌이할 길이 막힌 것에 격분하여, 바울과 실라를 빌립보 자치시 행정관들에게 끌고 가서 로마인들의 미풍양속을 해친 자들이라고 고발했습니다. 행정관들은 바울과 실라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발목이 차꼬로 채워져 깊숙한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기뻐하며 찬송을 부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무런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어두운 상황, 그런데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바울과 실라의 모습에서 우리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던 요나 예언자(2:2)와 불가마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던 다니엘서의 세 젊은이(3:24) 모습을 봅니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고 저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립니다. 그런데도 바울 일행이 달아나지 않은 것에 간수는 크게 감명을 받고, 그 밤중에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음식을 대접하며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에 두 번째 가정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이상이 지난 주일과 이번 주일 본문 이야기 요약입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의 두 번째 가정교회 탄생 이야기인데, 우리가 사도행전 1624절로 34절까지만 읽었지만, 실은 16절부터 23절까지도 본문입니다. 이 부분은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힌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위의 출발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이었습니다. 가톨릭 새번역은 그녀를 점 귀신 들린 하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여종하녀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노예였는데, 주인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노예를 여러 주인이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이 바울 당시에 일반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산의 공동소유가 일반적이진 않아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듯싶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눈이 가는 것은 주인이란 단어입니다. 주인(master)을 뜻하는 그리스어 원어 퀴리오스’(κύριος)는 주()나 주님(Lord)도 뜻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소녀의 주님은 누구일까요? 그러니까 여러 주인을 모시는 이 소녀는 여러 주님을 섬기는 우리 인간의 실존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도 섬기고, ‘명예도 섬기고, ‘지위도 섬기는 우리 인간들의 실존 말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우리말 성경이 점 귀신이라고 번역한 그리스어 원어를 직역하면 피톤의 영’(πνεμα Πύθωνα, spirit of Python)입니다. ‘피톤’(Python)은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 중부의 파르나소스 산 남쪽 기슭에 있는) 델포이/델피의 신탁소(信託所)를 지배했던 큰 뱀입니다. 이 뱀은 결국 아폴론/아폴로의 활에 맞아 죽습니다. 그렇다면 점 귀신들린 이 노예 소녀도 결국은 죽을 운명이고, 여러 주님을 섬기는 우리 인간들도 죽을 운명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녀는 바울 일행을 보고 나서 여러 날을 두고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인데, 여러분에게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17)고 소리 지릅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구원의 길이 맞는데,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 소녀가 말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그리스/로마의 최고신 제우스/주피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소녀에게, 아니 빌립보 사람들에게 누가 진짜 주님인지를 가르쳐줍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니, 이 여자에게서 나오라”(18). 성경은 바로 그 순간에 귀신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점 귀신을 쫓아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가 진짜 주님인가에 대한 선포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다. 예수가 참 주님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여성 노예가 귀신에게서 해방되자, 그녀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고소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다”(21)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부당한 풍속일까요? 우리말 성경이 부당한 풍속이라고 번역한 단어를 영어 성경은 unlawful customs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부당한 풍속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라는 뜻입니다. 먼저 노예를 더는 노예로 부리지 못하게 만든 바울의 행위가 당시 풍속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불법은 예수가 주님이다’(Jesus is the Lord)라는 선포였을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에서 주님the Lord는 오직 황제만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누가-행전은 기독교의 미래를 로마 기독교’(Roman Christianity)로 전망하기 때문에 예수와 예수 운동이 로마 제국과 대결했다는 것을 되도록 감추고자 합니다. 하지만, “예수가 주님이다라는 표현은 카이사르는 주님이 아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고,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행전은 예수가 주님이다라는 바울의 진술을 주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부드럽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옷이 찢기고 매질을 당한 후에 손과 발을 묶인 채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이야기는 감옥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둠이 가장 깊은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양을 드립니다. 함께 묶여 있던 다른 사람들도 그 기도와 찬양을 듣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고, 감옥 문이 열렸을 뿐 아니라 죄수들을 묶은 수갑과 차꼬도 모두 풀렸습니다.

놀라 잠에서 깬 간수는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모두 달아난 줄 알고 자결하기 위해 칼을 빼 들었습니다. 전날 치안관들이 자기에게 바울과 실라를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했는데(23), 그들이 탈옥했으니 이제 죄수를 놓친 중죄인으로 혹독한 고문의 과정을 거쳐 죽음의 형벌을 받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울이 그에게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28) 이 소리를 듣고 간수는 등불을 들고 감옥에 뛰어 들어가서 바울과 실라가 수갑과 차꼬가 풀려있음에도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무서워 떱니다’(29).

왜 간수가 죄수 앞에서 무서워 떨었을까요? 얼마든지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방 안에 그대로 앉아 있는 바울과 실라의 의연한 카리스마에 간수는 압도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과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살린 은인이었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상황에 감복한 간수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30)

여기서 새번역이 사도님’, 그리고 다른 우리말 성경이 선생님으로 번역한 단어의 원어는 퀴리오스’(κύριος)입니다. 그러니까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얼떨결에 자기 주인/()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였습니다(31).

이 대답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간수의 말처럼 바울과 실라가 가 아니라 예수가 주라는 것입니다. 둘째, 당시 모두가 주님으로 섬겼던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면 구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구원은 간수뿐만이 아니라, 간수의 집안 전체, ‘가정교회 구성원 전체가 누리게 됩니다.

빌립보에서 시작된 예수 공동체는 그랬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퀴리오스로 믿는다는 것은 당시의 세계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을 뜻했습니다. 바울에 따르면, 노예에 대한 주인의 착취가 없고,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의 차별이 없으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이 없는 세계를 의미했습니다(3:28).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at-one-ment) 삶을 의미했습니다. 한 몸여러 지체인 교회에서는 구별은 있으나 차별은 없었고, 모두가 존중받고 사랑받았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환대받고 나누고 섬기면서 그 사랑을 누렸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이런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상에 확산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클레시아입니다. 교회의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ésia)에크’(ek=from out)클레오’ (kaleo=call)의 합성어로 “(세상) 밖으로 부름을 뜻합니다. 교회는 늘 세상 속에서 존재하지만 절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과 다르게 작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밖으로 부름받은 공동체라 했던 것입니다.

 

부활 예수를 믿는 삶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속화를 그토록 죄악시하면서도, 가장 세속적인 가치를 가르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메시지로 왜곡하였고, “구원삼박자 축복처럼 세상적인 축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을 주님으로,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부활절 마지막 주간을 보내면서 부활 예수를 믿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 예수는 십자가 예수를 전제합니다. 죽음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죽어야 새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죽여야 합니까? 그것은 세상의 가치와 삶의 방식입니다. 로마적 세계관입니다. 힘이 최고라는 가치관과 힘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런 것들을 죽이지 않으면, 이런 것들에 대해 죽지 않으면 예수 부활은 절대로 내 부활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를 믿는 것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죽음이 내 죽음이 되어야, 비로소 예수 부활이 내 부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메시지의 원래 의미대로 예수를 믿음으로 로마 황제가 아닌, 세상 가치가 아닌 예수에게 충성하는 새 사람으로, 새로운 대안 공동체로 거듭나는 우리와 우리 교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