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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1년
제목 [7. 18] 기억합시다! | 양제신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1-07-18
조회수 19
첨부파일
p210718_질그릇 1단.pdf


 

기억합시다!

 

11그러므로 여러분은 지난날에 육신으로는 이방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뽐내는 이른바 할례자들에게 여러분은 무할례자들이라고 불리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12그 때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되어서, 약속의 언약과 무관한 외인으로서, 세상에서 아무 소망이 없이, 하나님도 없이 살았습니다. 13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14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17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18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20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며, 그리스도 예수가 그 모퉁잇돌이 되십니다. 21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서, 주님 안에서 자라서 성전이 됩니다. 22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함께 세워져서 하나님이 성령으로 거하실 처소가 됩니다. (2:11-22)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총이 원근 각지, 삶의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서울제일교회 교우들에게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가 기억하는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곧 돌아갈 것 같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희망과 바람의 실현을 목전에 두고 그것들은 다시 기약 없는 미래가 되어버렸습니다. 참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제는 이런 질문마저 스스로 하게 됩니다. ‘코로나 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정말 그냥 이러한 삶의 방식과 현실에 수긍하고 적응해 살아가는게 맞는가?’라고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누구 할 것 없이 참 힘든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힘듦의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 해결책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우리는 왜 이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의 기억력은 어떠신가요? 기억력이 좋은 편이신가요? 아니면 기억력이 썩 좋지 못한 편이신가요?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체의 노화가 진행될수록 기억하는 능력은 조금씩 퇴화해 갑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내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 ‘개구리 올챙이 때 기억 못한다.’ 등의 속담들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사람의 나약한 기억력을 지적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습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기억하고 학습된 대로, 익숙한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려 합니다. 스스로에게 불편하고 익숙치 못한, 기억되지 못하고 잘 학습되지 못한대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행동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공통된 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공통된 본성을 잘 극복하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위인 또는 성자로 생각하고 존경심을 가집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책인 에베소서의 핵심 주제를 신학자들은 우주론적 교회론이라고 정의합니다. ‘우주론적 교회라는 말이 가진 의미는 너와 나, 우리들의, 그리고 서로 다른 이들의 대통합입니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하면 에베소서는 분열에 대해 말하고 있고, 이 분열된 관계들에 있어 회복과 화합, 통합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관계, 가족 관계, 공동체 분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에베소서의 저자는 그 분열의 원인은 무엇이며 분열을 다시금 대통합으로 이끄는 해결책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이 에베소서의 메시지를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분열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에베소서의 수신인들처럼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깨져 살아갑니다. 가정이, 가족의 관계가 깨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 회사, 교회 속의 관계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깨져 살아갑니다. 나라가 안팎으로 하나되지 못하고 여러 정치적 신념과 이해 관계들로 싸우고 나뉘어 살아갑니다.

 

어느 시대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분열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되어 살아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분열되지 않고 하나되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바로 이전 에베소서 21-3절까지 말씀을 보면

 

1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불순종의 자식들이었습니. 내가 생각하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그저 나와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살았습니다. 이런 나와 너, 우리가 어우러져 살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자기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만 생각하고, 싸우고, 뺐고, 훔치고, 상처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싸우고 갈라지고 분열됐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4절 이하의 말씀은

 

4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로 할 수 없는 그 크신 자비와 사랑으로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깨어진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맨날 속 썩이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지도 못하는 우리를 자비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살리신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에게 이 말도 안되는,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게 형용하기 힘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7절 이하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7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보이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과시용일까요? 아니면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일까요? 8절의 말씀에서 에베소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우리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선물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의 의미를 담아, 마음을 담아 주는 것이 선물입니다. 선물은 왜 줄까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줍니다.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이 선물입니다. 잘하고 칭찬하기 위해 주는 것이 또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해서, 잘 살아서,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칭찬과 격려의 의미로 그 크신 선물을 주셨습니까? 9절의 말씀은 우리의 행위들 때문에 주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그 크고 풍성한, 형용할 수 없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바로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우리가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선물하신 것입니다. 10절은

 

10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의 첫 문장에 헬라어 이라는 접속사에 대한 번역이 우리나라 모든 번역본 성경에 빠져있습니다. 헬라어 은 우리 말로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입니다. 즉 다시 이 접속사를 붙여 읽으면

 

10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를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선한 일을 하게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신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갈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보기 좋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세상에 속해, 세상의 관점과 지혜를 따라, 하나님 없이 예수를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에 분열된 삶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이제 잃었던 우리의 기억을 되살리고 우리를 분열에서 대통합으로 이끄는 메시지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회복하고 그 선물의 참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에베소서 저자는 우리에게 14절 이하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4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15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16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처럼 있는 자리, 가는 자리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는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분열시키는,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로 화합시키고 통합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은 참 쉬운 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나와 우리가 너와 너희를 화합케 하고 주님의 평화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바로 십자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가지는 의미는 사랑과 그 사랑이 기반이 된 자기 희생입니다. 그 희생은 곧 무언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크신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대가를 바라지 않은 섬김입니다. 그리고 그 섬김으로 인한 너와 나, 우리들,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 간의 친교입니다. 그리고 그 섬김과 친교로 완성된 평화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평화는 스스로의 희생으로 막힘 담을 헐어버립니다. 가장 뛰어난 자가 스스로 모퉁이의 돌이 됩니다. 높고 빛나보이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닌 초라해 보이지만 기초를 다지는 든든한 반석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그리고 우리에게 그 크신 사랑으로 옛 사람의 사망에서 다시 사는 새 사람으로 사는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셨을 때 전재된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함께 한다.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연합,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을 말합니다.

 

에베소서 122절에서 23절의 말씀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즉 하나의 연합체로 이야기합니다. 즉 교회가, 나와 우리가 완전해지려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이 충만히 거하는 존재요 공동체, 다시 말해 성령께서 거하시고 역사하며 일하시는 존재와 공동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시작하는 첫 접속사가 그러므로입니다. ‘그러므로는 종속적인 의미를 담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평화를 선포하는 성령 충만한 자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잊지 말고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일을 행하며, 평화를 선포하고 통합과 화합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억합시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와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없습니다. 결국 변질되고 나약해지고 무너집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예수의 길을 따라 살아갈 때, 충만하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시고 역사하시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선한 일, 선한 싸움, 선한 열매를 맺는 우리들의 삶이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이 사실을 기억하여 그런 선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서울제일교회 모든 교우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