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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1년
제목 [11.7]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 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1-11-13
조회수 40
첨부파일
p211107_질그릇 1단.pdf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20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5:20)

 

2021년 추수감사절의 감사

복된 추수감사절 아침, 참 좋으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우리 모두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그리워하면서도 함께 만나지 못했던 여러분을 이렇게 만나게 되니, 그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더불어 만나서 함께 예배드리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기쁨이고 감사이기에 오늘 추수감사절 메시지는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마 생략할 수는 없어서 에베소서 520절의 말씀을 골랐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의 말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개역개정)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되, 감사의 궁극적인 대상을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 제목을 본문을 인용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감사란?

감사란 무엇일까요? 세계 윤리학 사전은 감사는 선물의 총량이 그 대가를 넘어섰을 때를 알려주는 마음의 지표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신학 용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 그런데 영어로 은총을 뜻하는 단어 ‘grace’‘gratis’(무료) ‘gratitude’(감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은총은 공짜 즉 무료로 내려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빈손으로 태어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느끼면저절로 감사가 우러나옵니다.

제가 은총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감사라는 단어 자체가 느낄 감’() 자와 사례할 사’() 자가 합쳐진 말이니 본래부터 감사는 느낌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사가 감성의 영역에만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어로 감사를 뜻하는 단어에는 ‘gratitude’ 말고 ‘thank’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thank’라는 말은 ‘think’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면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낌이 감성의 영역이라면, ‘생각은 이성의 영역입니다. ‘느낌에 의한 감사는 감각적으로 저절로 깨달아 반응하지만, ‘생각에 의한 감사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느낌으로는 감사할 수 없는 일도 곰곰이 생각해서 생각을 바꾸면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하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팔지 않겠소

이것과 관련해서 밥 러셀의 책 󰡔Money: A User's Manual󰡕에 나오는

한 농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 농부는 자기 농장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농장 안에 있는 큰 호수를 관리해야 하는 것도 귀찮았고, 풀밭을 초토화하는 살찐 젖소들도 이만저만한 골칫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또 울타리를 보수하고 가축을 먹이는 일도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서 그 농부는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농장을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며칠 후 중개업자로부터 농장을 소개할 광고문을 확인해 달라며 전화가 왔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이며 보드라운 목초가 쫙 깔린 곳, 깨끗한 호수로부터 자양분이 들어오고 가축은 무럭무럭 자라는 축복의 땅.”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듣고 있던 농부가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마음이 바뀌었소. 농장을 팔지 않겠소. 그 땅이 바로 내가 평생을 찾고 있던 땅이오.”

그렇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광고문을 통해 농부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가 지금껏 누리고 있던 것이 감사해야 할 대상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2021년 감사의 제목들

오늘 우리는 너무 오래 만나지 못했다가 다시 만나니 저절로 감사가 넘칩니다. 좋은 일이 있으니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모두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특별한 일만이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라,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평범한 일상뿐 아니라 비범한 시련과 역경, 그리고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작년 추수감사절에 “2020년 감사의 제목들이란 제목으로 증언했습니다. 그 일부를 다시 소개해 보겠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아 증언 제목을 “2020년 감사의 제목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계획과 기대와는 많이 엇나간 한 해였지만, 그 속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제목을 정했습니다. 김현승 시인은 <감사하는 마음>이란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그것을 곧 아는 마음이다! /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 主人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 마음이다.” 시련과 고통은 우리를 낙심하게 하고 삶을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 삶의 근본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 주인이 누구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2020년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 해였습니다.

대충 훑어보아도 다음과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사람이 멈추니 자연이 되살아났습니다. 하늘이 맑아지고, 강물과 바다가 깨끗해지고, 떠났던 동식물들이 되돌아왔습니다. 평소 사람이 즐비했던 장소는 원래 사람의 터전이 아니었고 다른 주인이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파

 

 

괴자요, ()임이 만천하에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코로나19로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대단한 줄 알았던 인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속수무책인 심히 연약한 존재였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유난히 길었던 장마와 여러 번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등 기상이변 때문에 기후위기의 심각성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또 지금처럼 살면 수년 내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덤으로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이 선진국이 아님도 알게 되었고, 약소국이요 후진국인 줄 알았던 우리가 강소국이고 선진국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나라나 국민도 없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신천지, 사랑제일교회 등으로 인해 개신교회 대부분이 가짜 기독교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와중에 비대면 예배로 인해 온라인 예배, 온라인 회의, 온라인 성경공부도 찾아냈습니다. 친교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아쉽지만, 건강하지 못한 교우나 지구생태계를 생각하면 미래의 교회를 앞당겨 산 경험이었습니다. 더구나 비대면 국면이었지만 몸의 거리는 멀었어도 마음의 거리, 기도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또 비대면 국면에서 놀기만 하지 않고 새로운 일도 많이 했습니다. 교회 리노베이션 공사, 옥상정원 조성 등이 그것입니다. 더구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새로운 일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경험과 시간들이 김현승 시인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말한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 主人이 누구인가를 깊이 아는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21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헤아려본 “2021년 감사의 제목들도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상황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추가할 사항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코로나19로 인해 누구나 알게 된 기후위기의 문제가 더는 강 건너 불이 아니라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임을 깨닫고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우리 교회의 최우선 선교과제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교회의 숨겨진 역량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라는 위기상황 속에서 많은 개신교회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랬습니다만 능히 감당하고 이겨냈습니다. 양적으로, 물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했습니다.

  



셋째는 사회적으로 소위 적나라한 기득권 카르텔의 민낯을 분명하게 보고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대선을 통해 어떤 정부를 세울 것인지 목표가 뚜렷해졌습니다. 비록 언론의 지형이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기에 선거 결과를 낙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촛불시민혁명을 성공시켰던 깨어 있는 국민이 있기에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결코 끝날 수 없고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코로나 19와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고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위드 코로나를 실시했던 많은 나라에서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많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있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편과 처지를 넘어 잘 대처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시련과 역경이 닥쳐도 끝내 극복해 낼 것입니다.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항상감사할 수 있기에 능히 감당하고 남을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불평하느냐 아니면 감사하느냐의 차이뿐이다. 감옥이라도 감사하면 수도원이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감옥을 수도원 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범사에 항상 하나님께 감사함을 통해 감옥을 수도원 되게 하는 기적을, 형평과 처지에 상관없이 늘 승리하는 기적을 계속해서 일으킬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