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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2022년
제목 [5.22]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 정원진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2-05-27
조회수 56
첨부파일
p220522_질그릇 1단.pdf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9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10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1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4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15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나"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16:9-15)

 

예루살렘 회의와 안디옥 사건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인 오늘 성서일과(RCL)가 제시한 본문 말씀은 사도행전 199절로 15절입니다. 지난주 본문은 사도행전 111절로 18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주 만에 본문이 11장에서 19장으로 훌쩍 건너뛰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11장의 주인공은 베드로였는데, 19장의 주인공은 바울입니다. 물론 누가-행전의 진짜 주인공은 성령이지만, 성령께서 11장에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그리고 19장에서는 바울을 통해서 일했다는 말입니다. 11장에서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예루살렘교회에 보고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담대한 전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까지 정결 음식 규정과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 금지를 목숨같이 지켜오던 베드로가 전향한 것과 유대인 선교에만 머물다가 이방인 선교까지 수용한 초대교회의 전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지난주 본문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이 말을(즉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 그들은 잠잠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셨다하고 말하였다”(11:18).

이렇듯 고넬료 사건으로 인해 이방인 선교의 길이 열렸지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할례였습니다.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측과 그럴 필요가 없다는 측으로 나뉘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은 선()할례 후()구원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구원에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혜를 무시하는 것이었기에 이방인 선교의 대표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은 이를 절대로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모인 것이 예루살렘 회의였습니다. 바울은 이 회의에 대해 갈라디아서 28절과 9절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8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2:8-9)

 

그러니까 예루살렘 회의에서 모든 사도가 합의했던 결정은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담당하고, 주의 형제 야고보와 게바, 즉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인 선교를 담당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증언이 사도행전 15장에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의 할례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런데 추가요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바울의 증언과 사도행전의 증언이 각각 다릅니다. 먼저 바울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10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바란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2:10)

 

이에 반해 사도행전 1520절은 주의 형제 야고보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증언합니다.

 

20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차이가 나중에 안디옥 사건의 도화선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11절로 13절에서 바울은 안디옥 사건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11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그것은 게바가, 야고보에게서 몇몇 사람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그들이 오니, 할례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2:11-13)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이방인과의 식탁 교제입니다. 그런데 이미 이 문제는 고넬로 사건때도 양해됐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가 된 것은 우상에게 바친 음식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것이 위선문제입니다.

당시 안디옥 시장에서 팔던 고기는 전부 이방 신전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우들은 그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비롯한 안디옥 교우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니, 우상은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고기 먹기를 꺼리는 사람들 앞에서는 안 먹고 삼가는 것이 배려예의일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베드로와 바나바가 슬며시 이방인과의 식탁 친교 자리를 떠났는데, 바울은 그것을 지적하며 위선이라고 한 것입니다. (고전 8장 참조)

그 결과 바울은 바나바와 결별하게 됩니다. 안디옥 사건이 결국 분열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계속 동쪽 소아시아를 선교했고, 바울은 바나바가 활동하지 않는 서쪽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사도행전은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 이유를 마가때문이라고 증언합니다(15:36-41 참조). 또 바울의 아시아 선교를 성령이 막았다고 합니다(16:6-7). 하지만 이것은 역사사실이 아니라 누가-행전저자의 해석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의 마케도니아인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바울은 세계사를 바꾼 유럽 선교를 시작하게 되고,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첫 장면입니다. 본문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9여기서(드로아에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10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16:9-10)

 

성령이예수의 영이 바울을 마케도니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그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시대의 마케도니아인, 곧 복음과 만나야 할 이들은 누구일까요?

지난주일 증언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시대의 마케도니아인은 기후위기 앞에 서 있는 인류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 위기극복을 위해 우리가우리 교회가 먼저 담대한 전환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내년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서제빌딩 101호에 생태환경 가게를 개점하는 것과 그것을 실무적으로 담당하고 나아가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활동할 생태환경 사회선교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생태환경 사회선교사로 선발된 김요한 전도사는 당장 6월부터 이런저런 전문 교육을 받게 될 것이고, 내년 5월에 어떤 생태환경 가게를 개점할지 연구하고 조사하고 준비할 것이며, 가게 개점 후에는 다른 교회에 제로웨이스트샵을 열 수 있도록 도와주러 다닐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생태공동체운동본부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등에서 실무자 또는 지도자로 활동할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이 기독교 생태환경 운동의 마중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성령의 이끄심으로 유럽 선교를 시작해서 세계 역사를 바꾸었듯이,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으로 시작한 이 생태환경선교가 한국교회를 갱신하고 기후위기로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살려내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서울제일교회 교우들은 이 위대한 사역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1970·80년대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불러 이 나라 민주화의 마중물로 사용하셨듯이, 이제 2020년대는 우리를 불러 기후위기로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살려내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모두 아멘으로 응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장애인인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우리 시대의 마케도니아인은 기후위기 때문에 죽어가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로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많은 이웃이 존재합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마케도니아인으로 장애인을 꼽고 싶습니다.

매년 420일은 장애인의 날입니다. 우리 교단도 그 직전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지킵니다. 하지만 제 기억에 올해를 포함한 지난 7년간 우리 교회가 장애인주일을 지킨 것이 몇 번 안 됩니다. 그만큼 소홀히 다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주일이 다른 특별한 주일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부활절과 겹쳤습니다. 일반적으로는 ‘4·19혁명기념주일과 겹칩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장애인주일은 소외됐습니다.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이면, 소외된 현장을 찾아가 예배하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연합예배가 열립니다. 우리 교회는 매번 여기에 참석했는데,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지난 2년간은 온라인으로만 열렸습니다. 그러다 지난 417일에 ‘2022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연합예배가 혜화역 2번 출구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대면으로 열렸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청년부가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64만 명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5%입니다. 즉 우리나라 인구 20명 중 1명꼴로 장애인입니다. 20명 중 1명이 장애인이라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왜 우리는 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울까요?

지난 426MBC < PD수첩 >에서는 우리가 장애인을 볼 수 없는 이유편이 방송되었습니다. 이날 방송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와 함께 발달장애인들의 어려운 생활 등을 담았습니다. 이 방송을 연출한 성기연 PD는 지난 32일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에 이 방송을 기획했답니다. 그 사건은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던 엄마 둘이 각각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녀를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 다닙니다. 보통 12년에서 14년을 교육받고, 졸업해서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주간보호시설 같은 기관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그런 시설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경기도를 예로 들면, 경기도의 발달장애인은 11만 명이고, 그중에 중증장애인은 56천 명입니다. 그런데 경기도에서 커버할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의 총인원은 3천 명대입니다. , 경기도 발달장애인 중 3% 정도만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97%는 어디에 있을까요? 개인이, 가족이 안 보이는 곳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32일 사건 같은 사건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동권 투쟁

지난 3월 말경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저는 전장연의 이동권 투쟁이 최근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작년에 교회 직원이 4호선을 타고 출근하다가 몇 번 늦은 일이 있어서 그 무렵에 시작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번 <PD수첩>박종필 감독의 다큐 <버스를 타자>(2002)와 이번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를 교차·편집해서 방송했습니다. 성기연 PD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편집하느라 예전 자료를 많아 보잖아요. 너무 똑같더라고요. 상황도 멘트도 너무 와닿았어요. ‘21년을 똑같이 외쳤는데 이렇게 몰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렇습니다! 장애인들은 이동권 투쟁을 21년간 해 왔는데 우리는 잘 몰랐습니다. 즉 장애인의 이동권은 21년 전과 크게 바뀐 것이 없습니다. 사실 누구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속도가 다릅니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입니다. 엘리베이터를 만들면 노인들이 훨씬 더 많이 씁니다. 경사로를 만들면 유모차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 편의시설은 꼭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PD 수첩>장애인이 편해야 모두가 편하다라는 마무리 말로 끝납니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사고가 나거나,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면 누구나 장애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앞서 소개한 “2022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의 주제는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였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연대하기 위한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예배 중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유진우 활동가의 발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시지요.

 

사람들은 구조적인 차별을 개인 문제로 취급합니다. 하지만 마음껏 외출하지 못하니 교육을 받을 수 없고, 교육을 받을 수 없으니 일할 수가 없고, 일할 수 없으니 지역사회에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장애인을 선교의 대상, 시혜의 대상, 도와줘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겼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운동판에서는 장애인 한 명 한 명을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봤습니다. 예수는 사회 변두리에 있는 자들을 찾아가서 함께 먹고 마시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들의 주체성을 회복시키고, 다시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변두리로 밀려난 장애인들이 주체성을 회복하고, 구조적 차별에 맞서고, 끝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장애인만 위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그러니 장애인 권리 투쟁에 함께 해주십시오.

 

그 옛날 성령께서 환상을 통해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유진우 활동가의 발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일일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장애인이 편해야 모두가 편하고,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아야 모두가 잘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하고 말입니다.


저들은 우리도 존엄한 존재로 인정해달라고, 인생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세상 한복판에서 주눅 들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지난 21년간 눈감아왔던 저들을 바라보십시오. 저들의 절규에, 저들을 통해 말씀하는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저들의 투쟁 때문에 다소 불편하더라도 참으시고, 오히려 손뼉 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십시오. 시간 날 때마다 기억하고 관심하고 기도하십시오. 가능하다면 후원하고, 연대하고, 함께 투쟁하십시오. 저들을 통해 이제껏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달으십시오. 그래서 마침내 참 구원에 이르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