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마당 > 설교

설교

카테고리 2022년
제목 [6.12]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 신연식 목사
작성자 seouljeil
작성일자 2022-06-15
조회수 41
첨부파일
p220605_질그릇 1단.pdf
p220605_질그릇 1단.pdf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총회선교주일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오늘은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이자, 우리 교단이 제정한 총회 선교주일입니다. 지난해 9월 열린 제106회 총회에서 우리 교단은 이번 총회 주제를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라고 정하고, ‘생명, 치유, 회복을 부제로 붙였습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라는 이 말은 라틴어로 포스트 테네부라스 룩스(Post Tenebrae Lux)’라고 하는데,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우리가 암흑의 시대로 알고 있는 중세시대입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Post Tenebrae Lux)”는 당시 어두움에 휩싸인 교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개혁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의 소망과 의지를 담은 슬로건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중세시대는 십자군 전쟁을 위시하여 마녀사냥과  종교재판,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음으로 내몰리던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이로 인해 중세 후기 교회는 이중, 삼중의 어두움에 묻혀 있었습니다. 교회가 성경을 멀리하고 세속적인 이익에 몰두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뜻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삼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런 암흑의 시대에 스위스 종교개혁자들은 아주 절실한 마음으로 소망과 의지를 담아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라는 이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올 것이라는 그 간절한 소망조차도 없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이 어두움을 견디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상황, 끝도 없이 계속되는 죽음의 공포 앞에 이 슬로건은, 이 믿음은 마지막 끈이자, 소망의 빛이었습니다. 만약 이마저 없었다면, 그들은 그냥 어둠 속에 묻혀버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우리 교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마찬가지로 그 시작은 짙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우리 교단은 1953610일에, 38회 호헌 총회를 열고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분립해 새역사를 시작했습니다. 1953년은 3년간의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사회 전반이 무너진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미국 근본주의 신학과 당시 교권에 의해 신앙양심의 자유가 매우 억눌리고 경직된 시기였습니다.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조선신학교는 직영이 취소되고, 학장이던 김재준 목사는 파면됐습니다. 중세시대의 암흑기처럼 외적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의 위협이, 내적으로는 신앙의 위기가 짙은 어두움으로 몰아치던 때, 우리 교단의 새 역사가 시작된 셈입니다.

 

우리 교회는 같은 해인 1953517일 창립해서 그 어두운 시절을 교단과 함께 견뎌왔습니다. 우리 교단의 사회 참여적 선교 활동에 우리 교회가 중심적 역할을 감당했고, 그로 인해 이후 ‘80년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또 한 번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두 번의 큰 어려움을 잘 극복해내면서 우리 교인들은 이미 어두움 후에 빛이 온다라는 이 희망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2023년에 창립 70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와 새역사 70주년을 맞는 우리 교단은 이제 또 다른 시대적 어두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고 어둡습니다. 우리 인류는 존망의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 과학자들이 창설한 핵과학자회(BAS)1947년부터 매년 지구 종말시계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하는 예측을 발표하고 있는데, 올해 현재 지구 종말시계는 자정 100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애초에는 핵전쟁 위험만을 알리던 지구 종말시계에 최근 기후변화와 코로나19의 변수를 포함했더니 나타난 결과였습니다. 지구가 생존하는 시간을 24시간이라고 한다면 벌써 23시간 58분 하고도 20초가 지나 이제 남은 시간은 약 100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매우 어둡고 절박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이번 총회 주제를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으로 정한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은 암담하리만큼 캄캄한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고통받는 피조세계가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능력 안에서 치유되기를 소망하며, 카이로스의 시기에 온 교회가 새로운 연대적 형제자매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것을 촉구하며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생명, 치유, 회복이라는 주제를 채택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어두움?

그러나 우리의 절박함과 달리 여전히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는 것은 자연의 당연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냐?’ ‘인간 만사가 새옹지마인 것처럼 나쁠 때가 있으면 곧 좋은 날이 오지 않겠냐?’ 하면서 지금의 현실이 별일 아니라거나 지금 당장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상당수의 신앙인은 속히 이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길 바라면서도 자신의 삶은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고, 다시금 예전의 일상이 회복되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교회에 나와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금방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하고 왜곡된 희망을 제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앞으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기후위기를 비롯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하는 허황된 희망을 주장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1413절에 그들은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기근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화를 주신다하고 거짓말하고 있다고말하고 있는 예례미야의 증언처럼 지금 이 긴박한 현실에 괜찮다 괜찮다말하며 변함없는 희망을 전하는 것은 거짓 예언과도 같습니다. 시인 정호승 님의 시 중에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이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앞서 시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때로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희망은 현실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또 마약과 같이 잠시 현실의 고통과 현실의 위기를 잊게 하는 희망도 제대로 된 희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절망에서 피어난 희망이 진정한 희망이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처럼 고통에 직면해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하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치유의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깊은 어두움을 경험해본 사람이 빛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깊은 절망을 겪어본 사람에게 희망의 가치가 빛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가 직면한 어두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희망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두움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생태계 파괴로 인해 직면하고 있는 팬데믹 상황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짧은 시간동안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언제고 또다시 팬데믹이 시작할지 모르기에 두렵고, 이대로 가다가는 인류 대멸절이라는 끔찍한 미래가 바로 첫 번째 어두움입니다.

둘째는 양극화의 심화입니다. 한국 사회의 경우 오늘날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고도의 발전을 이뤄냈지만, 반대로 소득 불평등 지수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 수준일 만큼 소득의 심각한 양극화와 계층 간의 갈등이 크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사회적 안전망 부재로 잠재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어두움입니다.

셋째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할 교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연대하고, 세상에 대한 회복할 책임성을 포기했습니다. 생태계의 파괴, 양극화의 심화로 인해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세상에서,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할 교회는 팬데믹으로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에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위험한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세 번째 어두움입니다.

 

생명, 치유, 회복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그렇다면 이 어두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단 총회는 부제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과 치유와 회복의 공동체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과제를 살펴보자면, 먼저 하나님 없는 창조세계의 위험성을 자각하고 기후위기에 긴급히 대응하며, 문명적 대전환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피조세계로 연결된 공동의 생명임을 각성하는 것입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가 아니고 곁에 있는 내 이웃, 그리고 자연 생태계가 잘 살아야 나도 살 수 있고 모두가 살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안전망을 구축하고 또한, 생명 살림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셋째는 혐오와 배척이 아니라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연대적 공동체를 이뤄내는 것입니다. 차별을 중단하고, 포용과 화해를 통해 함께 연대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희망은 있을까? 변화가 가능할까?’하는 의심들이 자꾸 생기고 희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가 생겨납니다.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은 무엇이며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저는 그 물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51-5절의 말씀은 오늘 성서일과가 제시하는 서신서의 말씀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의 편지들 가운데서 가장 긴 편지로, 로마 크리스천들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바울의 입장을 정리해 놓은 책입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현실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로마 크리스천들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꿈과 열정을 전달하여 분명한 희망과 확신을 심어줄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폭력을 통한 평화’, ‘승리를 통한 평화가 지배하는 어두운 로마제국의 현실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로마 크리스천을 비롯해 폭력적 제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전체를 읽어보면 갈라진 세상을 치유하고, 폭력에 근거한 불의를 정상적인 것으로 보는 세상을 종식시키며, 서로 화합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고 협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폭력의 종말, 제국의 종말이 이루어지는 희망을 은혜로 선물해주십니다. 잔혹한 제국의 어두움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51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1)

 

여기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하는 말은 우리가 잘 믿어서 의롭게 되고 내세에서 천국에 가는가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지금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변화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말한 믿음은 하나님의 꿈에, 하나님의 선교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그 믿음은 단지 확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포함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협력하고, 동참하는 그 믿음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의롭게, 정의롭게 변화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힘과 폭력에 근거한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평화를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2절은 보면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2)

 

1절에 이어 2절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하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참여함을 통해 정의롭게 되고, 평화에 이르게 된 사실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드러났고 복음 덕분에 우리가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3절과 4절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4)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과연 환난을 자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 말씀을 두고 한참을 묵상하다가 박형규 목사님의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박 목사님께서 민주화운동으로 여러 차례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때때로 여러 가지 고문도 당하셨답니다. 보통은 고문을 당하면 의지가 꺾이고 주눅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박 목사님의 경우에는 손톱 밑을 찌르고, 수염을 뽑고, 잠을 안 재우는 등의 아무리 고문을 해도 겁을 먹거나 주눅 들거나 화를 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고문을 하는 사람이 주눅이 들어 조심스레 대하고, 그 후로 박 목사님께는 정중하게 대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난을 당하고도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박 목사님께서 그 많은 고문 앞에서 두려움이 없으셨던 건 결국에는 정의가 이긴다, 진실이 이긴다.’ 하는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하는 이 구절은 결국은 하나님께서 폭력적 제국을 끝내고 정의와 사랑을 통해 이루는 평화 세상을 이루실 것이다하는 믿음, 그 희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을 희망을 낳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짙은 어두움, 그 긴박한 위협 앞에 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몇 명이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나 또 이 큰 위협 앞에 별수 있나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꿈에 동참할 뿐 그 꿈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갈라진 세상을 치유하고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을 종식시키며, 서로 화합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가자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비록 그 길이 어렵고 고난이 따를지라도 그 걸음을 통해 우리는 희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빛으로

끝으로 총회주제 관련 자료에 실린 한 내용이 마음에 남아서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단 목회자이신 최병학 목사님께서 인용하여 덧붙여 작성한 글입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원장은 2050년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 2020년이 이렇게 기록되기를 바라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2020년은 성장과 효율, 그리고 개발만 추구하던 인류가 안전과 생명에 눈을 돌리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녹색혁명이 시작된 해였다. 코로나19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동시에 과거부터 계속되어오던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20년은 한국 사회의 혁신적 성장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조, 그리고 의료진과 국민들의 자발적 공조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21세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최병학 목사님은 여기에 한국교회의 모습을 더 추가했습니다.


“2020년을 기점으로 한국 개신교회는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기존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맹신주의, 교권주의를 벗어나 사회의 질적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말씀 중심, 평신도 중심과 하나님의 선교로 관점을 전환하였으며, 교회 내적으로는 질적 성장을 추구, 비록 교세는 위축되었지만,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질적으로 변화하여 개신교의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하였으며, 서구신학을 추종하던 시대를 지나 토착화 신학의 전거를 마련하며 21세기 새로운 교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의 위기가 가져온 어두움을 성령의 빛으로 극복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30년 후에 오늘 2020년대를 바라볼 때 이렇게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을, 또한 한국교회를 이렇게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아직 30년이 남았습니다.

30년 후 교단 100주년, 우리 교회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요? 저는 위기를 기회로, 어두움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우리가 될 것이라 믿고 희망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교인들은 이미 잘 하고 계시고, 또 열심히 노력하고 계십니다. 멈추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의 삶을 변화해 가며 최선을 다합시다. ‘어두움 후엔 반드시 빛이 온다는 이 희망을 삽시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이 어두운 현실을 딛고 새 세계를 열어가자며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비록 우리의 힘은 작고 미약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교단 새역사 70주년을 앞두고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창립 70주년을 맞게 될 우리 서울제일교회가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이 어두움 가운데 희망을 펼쳐갑시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실현하실 그 세계와 그 희망을 마음에 품고 또 한 주간 힘차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