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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 임기란 권사님 추모사
작성자 revjung
작성일자 2020-07-03
조회수 54

  고 임기란 권사님 영전에



  권사님, 제가 권사님을 개인적으로 처음 만난 것은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찾아가 뵈었을 때였습니다. 그게 아마 2016년 가을이었지요. 비록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씩씩하셨고, 목소리도 우렁차셨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천상 ‘여장부’셨지요.
  하지만 그건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 그 교회의 원로권사로서의 만남이었고, 사실은 그 훨씬 전부터 저는 여기저기서 권사님을 만나왔더군요. 87년 6월 항쟁 때 거리 곳곳의 투쟁 현장에서, 1991년 제가 다녔던 향린교회 홍근수 목사님이 구속되면서 열렸던 이런저런 기도회에서, 또 수많은 양심수가 재판받던 법정에서 저는 늘 민가협 어머니들을 뵈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수괴’가 권사님이셨더군요.
  당시 민가협 어머니들은 참 대단하셨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집회, 농성, 시위 현장의 맨 앞에서 싸웠고, 시위 도중 전경에게 끌려가는 학생들을 맨몸으로 구해내셨습니다. 또 양심수와 이주노동자, 병역거부자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도 힘쓰셨지요. 저는 민가협 어머니들이 “감옥에 간 금쪽같은 내 아들·딸을 후원하려고 만든 단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자기 아들·딸이 석방되었는데도 1-2년이 아니라, 10-20년, 아니 늙어 몸이 병들어 쓰러질 때까지 30년 가까이 싸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민가협은 처음에 민주화운동가들과 그 가족을 보듬고 후원하고자 만들어졌었는지는 몰라도, 얼마 안 가서 분명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 실천가들의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실천가들이 아니라 맨 앞장을 서는 실천가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민가협을 ‘민주화운동의 기동타격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권사님은 그 타격대의 대장이셨습니다. 어찌 30년 가까이 그 노고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내 자식을 끔찍이 사랑했던 어미의 마음이,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보이게 되자 이제 누구의 자식이라도 억울하게 감옥 가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하는 참 어미의 마음으로 커졌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참 어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지요. 그렇게 권사님은 지난 세월 동안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닮아가신 것입니다.
  권사님이 돌아가시자 언론은 권사님을 ‘거리의 어머니’라고 칭하더군요. 서울제일교회 박형규 목사님이 당신 자신을 ‘길 위의 신앙인’이라고 하셨으니 두 분의 만남은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지요. 권사님은 서울제일교회가 중부경찰서 앞에서 거리 예배를 드릴 때 제 발로 찾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더우나 추우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당신 자리를 지키셨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은 힘들다고 있다가도 떠나는데, 권사님은 그 힘든 자리를 일부러 찾아오셨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곳,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곳, 권사님은 언제나 우리 사회 곳곳의 그런 곳을 찾아가 곁이 되어 주셨고, 당신의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셨고, 이것저것 많이 베풀어 주셨고, 그 큰 품으로 보듬어 주셨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사회는 권사님께 많은 빚을 졌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한 시에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권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권사님이 낸 그 길을 따라 걸어 우리 사회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더 민주화되었고 인권이 신장하였습니다. 권사님이 계셨던 그만큼 우리 사회는 더 좋아졌던 것입니다.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하나님이 부르셨으니 남은 과제는 저희에게 맡기고 훌훌 털고 천국 가셔서 하나님 품에 안겨 편안히 쉬십시오. 그리고 민주화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또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거기서도 계속 저희를 힘차게 응원해 주십시오. 감사했습니다, 권사님.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2020년 7월 1일
서울제일교회
정원진 목사 올림



*이 추모사는 2010년 7월 1일(수) 오후 7시에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 빈소에서 열렸던 <양심수의 어머니, 고 임기란 여사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가 주최한 <추모의 밤>에서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발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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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techu 아멘, 아멘! 임기란권사님의 몸울 주님께서 새롭게 하여 주심울 믿습니다! 2020-07-04 12:02:15